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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초와 야생

두메산방 살아남기 2탄

by 두_메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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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섭리에 끼어든 걸 자책하다

고라니를 묻은지 이틀이 지났다. 야생동물들의 생태, 말하자면 자연의 섭리에 불쑥 인간이 끼어든 게 되어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그들의 평형은 죽거나 도망치거나 있는 그대로의 그 모습이어야 하는 것을... 의도치 않게 나타난 인간은 담비에게는 재앙이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다음부터는 더 조심해야 할 일이다. 

씨앗 파종 그리고 일상

아침부터 고랑의 잡풀 돋는 것들을 솎아 낸다. 상추와 대파 씨앗 파종을 할 참인데 많이도 필요없으니 작년에 뿌리고 남은 약간의 양만 가지고도 충분한 듯하다. 얼었던 땅이 녹아 흙도 부슬부슬하고 기름져 보여 흙을 만지는 기분도 새 봄을 맞아 아주 좋았다.

라디오를 켜고 차양 밑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 본다. 나름 그때그때의 일상을 적는다. 그게 그거인 일상이지만 들여다보면 같은 날은 없다... 지나치며 미뤄 두었던 일. 큰물에 휩쓸려 개울에 처박힌 나무다리를 복원하는 일을 시작한다. 생각보다 웬간히 무겁다. 통나무 3 개를 디귿자형 꺽쇠로 묶어 놓은 것인데 들리지가 않는다. 원 참... 어깨로 받치고 일어나자 간신히 개울 건너편 맨땅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휴... 큰일 했네...

오늘 남은 건 고로쇠물을 회수 하는 일... 산을 한 바퀴 돌았으나 큰 수확은 없다. 날이 조금 추웠는지 고로쇠는 물을 많이 내주진 않았다. 그래 산방으로 돌아와 불을 때고 있을 때였다.

고라니를 포기했던 담비, 이날 밤 노루를 잡았을까...

 

뜻밖에 노루를 추적하는 담비들을 만나다...

부엌에 있는데 밖에서 무언가가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후다닥 나가보니 산방 바로 밑길로 노루 한 마리가 그야말로 터벅터벅 지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게 아닌가... 아뿔싸... 휴대폰 어딨냐... 폰을 준비하고 다시 나와 보니 노루는 벌써 뒷산 내가 만들어 놓은 흙계단을 밟으며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엉덩이가 하얗게 보이니 틀림없는 노루... 헌데 이상했다. 인기척이 있고 굴뚝에선 연기가 올라와 사방에 퍼지고 있는데 겁 많은 노루가 저렇게 천천히 발걸음을 떼다니... 참... 어울리지 않는 상황. 지켜보니 노루는 무척 지치고 탈진한 듯 보였다. 가야 할 방향을 잡는 것도 노루답지 않게 전혀 올라갈 수 없는 쪽을 선택한다든가... 판단력도 흐트러진 거 아닌가...? 아무튼 그렇게 노루는 나무 사이로 사라지는데 이런 상황은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그런데 또 뒤에서 뭔가가 산방으로 다가드는 느낌과 기척이 느껴진다. 조심조심 뒤로 돌아가보는데...

엇...!! 담비다. 풀숲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접근한다. 아까 복구한 나무다리 위로 올라서기도 하고... 노루가 갔던 방향으로 직진하고 싶은데 함께 섞여 있는 인간의 냄새를 맡은 듯 주저한다. 이윽고 뒤로 돌며 잽싸게 옆으로 튼다. 그런데 그 뒤를 또 한 마리의 담비가 따른다. 모두 2 마리. 혹시 이 친구들이 고라니를 사냥했던 그 담비들이 아닐까... 담비들은 산방을 크게 우회해 노루가 올랐던 방향으로 휙 사라져 간다. 노루와 담비들의 행색으로 보아 아마도 담비는 하루종일 쉴 틈 없이 노루를 몰아 부친 듯했다.

마음이 왜 그런지 걸쩍지근하다. 두메산방에 밤은 오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은 이토록 치열한 것인가...

아무쪼록 어떤 형식으로든 그 모두에게도 각자의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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