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산방은 멧돼지와 고라니 놀이터
매년 겨울이면 사냥꾼들이 몰려올 정도로 두메산방 주변은 멧돼지와 고라니의 주 서식지다. 사람의 접근이 많이 제한되는 데다(교통이 불편해서) 숲이 울창해 먹을게 풍부하다.(내 생각임) 어찌 됐건 야생동물들이 꽤 안전하게 서식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8-9마리 정도의 멧돼지 가족이 산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산방 앞까지 서너 마리씩 몰려오기도 한다. 돼지가 이렇게 용감한 반면 고라니는 가까이 접근은 하지 않으면서 꽥꽥 소리 지르는데 마치 내 영역에 너 왜 들어왔니?라고 외쳐대는 것 같아 이럴 때면 나도 소리를 지른다.
야 임마...나두 살 권리가 있다.....
고라니 소리는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데 신통한 것은 항상 두메산방과 일정 거리를 둔다는 게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듯하다. 이곳저곳에 고라니 배설물이 많으니 흙에는 더 좋으려나...ㅎㅎ.
두메산방의 친구들 - 수달, 두더지, 고라니 멧돼지 등
산방에서 지내다 보면 이곳의 동물들의 종류가 훤히 들어온다.
경칩이 지나면 개구리가 한가득 모여서 울어 대는 웅덩이. 이곳은 한 달에 한 번씩 수달이 골짜기 밑에서 올라온다. 최상류의 마지막 웅덩이라 이곳에서 한번 수영을 하고는 다시 내려가는 것... 마치 이곳까지 자신의 영토임을 과시하는 듯하다. 가끔 땅이 길게 부풀어 있는 걸 보게 되는데 영락없이 두더지님께서 지렁이를 잡아먹느라 땅을 판 결과이다. 어두운 밤에 뭔가 사각거리며 계속 움직이는 듯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뭐지...? 나가 보면 그게 딱 두더지! 설치류, 고양잇과들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소리 족제비 등이 접근하는 건 보지 못했고 이들을 포함해 대부분은 산방 가까이 오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쉽사리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으니 두메산방은 가히 동물관망대라고나 할까...
담비의 고라니 사냥
2023년 3월 초. 동물들이 서로 싸우며 울부짖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온 골짜기에 갑자기 울려 퍼진다.
처음 듣는 소리라서 의아해하며 소리 나는 곳으로 향했다. 멀리 담비 같은 길쭉하고 몸이 날랜 짐승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바닥에는 뭔가 긴 게 누워 있고... 아니 저거 혹시...? 나를 보자마자 작은 담비 3마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역시 고라니였다. 다 자란 어른인 거 같은데 뒷다리 발목께 가죽이 벗겨져 있는데 한쪽은 방금 생긴 상처, 다른 편은 더 크게 찢겨 있었는데 상처 부위에 진흙이 전체적으로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훨씬 전에 입은 치명상으로 보였다. 고라니 수컷은 눈을 뜬 채 이미 죽었고... 황당했다. 이런 사체를 본 것도 처음이고 작은 담비의 치명적인 사냥에도 놀라고... 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순간 온갖 생각이 난다. 아니지. 고라니는 온 힘을 다해 살기 위해 뛰었을 거고
담비란 놈은 또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사냥을 했을 건데... 죽은 고라니는 그냥 그 자리에 두기로 한다. 지금은 인기척에 놀라 도망쳤겠지만 밤중에 몰래 와서 가져가겠지...
고라니를 땅에 묻다...
고라니는 참 안 됐고 담비에게는 아주 미안했다. 살기 위해 잡았을 텐데 내가 나타남으로 인해 잡아놓은 걸 놓치고 굶게 생겼으니 말이다. 걱정이 돼서 밤에도 나가 보았다. 그대로였다. 헐. 다음 날 또 찾았는데 역시 담비는 그냥 포기한 듯싶었다. 까마귀는 몰려드는데 이미 고라니의 눈은 까마귀가 파먹은 상태... 어 이거 난감하네... 담비를 기다리자니 허참. 까마귀는 왜 이리 몰려드냐...
결국 산에 묻었다. 이번 생은 폭망 했으니 극락왕생하길 바라고 다음 생엔 더욱 좋은 팔자로 다시 태어나길...
두메산방에서의 삶... 도망치거나 아님 죽거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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