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새해에는 어떤 작물을 해야 하나 생각해 보던 중 아쉬움이 남는 채소가 떠오른다. 수확을 해도 먹는 방법이 다양하지 않아 약간은 애를 먹였던 채소... 바로 가지다. 가지는 사람에 따라 기호가 갈리는 채소라고 하는데, 그렇게 판단하기 이전에 과연 사람들은 이 가지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가지에 얽힌 생각과 가지의 맛, 그리고 가지 요리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알아본다.
1. 생가지의 맛을 아시나요?
가지를 생으로 먹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테지만 마트에서 판매되는 가지를 사서 생으로 한 입 먹어보시라. 달짝지근한 맛도 별로 없고 약간 쓴 듯한 맛도 느껴지는 뭐 그런 맛...? 이렇게 맹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유통단계를 거치면서 날짜가 지나버려 특유의 맛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텃밭에서 바로 수확한 가지를 한 입 베어 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마치 양배추를 씹을 때처럼... 폭신폭신한 식감에 즙이 많은 채소! 이게 바로 가지다.
2. 대표적인 가지요리 - 가지무침
1)호불호가 갈리는 가지무침
보통의 가정에서 가지를 사면 주로 껍질째 잘라서 데친 후 무침으로 많이 먹는다. 물론 산속 생활에서는 이보다 더 간단하게 먹기도 하지만 이런 건 예외일 것이고... 암튼 이 가지 무침은 사람들 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반찬 중의 하나다. 이 반찬을 싫어한다면 단순히 맛이 약하거나 맛이 없어서 안 먹는 것이 아니라 가지의 식감과 향취가 싫어서 젓가락이 안 가는 경우일 것이다. 특히 대충 익히거나 찐 가지는 그 특유의 속살이 물컹하면서도 껍질은 질깃해 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수 있으리라 본다. 또 냉장고에 보관한 이후 차갑게 식은 채 물컹거리는 가지무침이라면 더욱 싫어질 수도 있겠다.
2) 가지 무침 맛나게 조리하기 - 과육의 수분조절이 중요하다
양념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 끼얹어도 가지무침에 대해 기호가 갈리는 원인은 무얼까? 질깃하고 물컹거리는 식감을 싫어한다면 결국 가지를 데친 상태에 따라 호불호가 나뉜다는 얘긴데 그만큼 가지는 요리 초보자에게 쉽지 않은 재료라는 말이다. 가지의 수분을 어느 수준으로 맞추느냐에 따라 식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지 요리의 기본은 수분조절이라 할 수 있다. 실제 가지는 93~94%가 수분이다. 과육에 물이 많아 조리 시에 간을 맞추기 어렵고, 튀기거나 볶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러면 데치는 것은 만만한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본다 하더라도 한눈을 파는 짧은 순간에 가지는 곤죽이 되기 십상이다. 가지를 데치는 요령에 대하여 어떤 요리가는 '끓는 물에 가지를 넣고 30초, 식감을 좀 더 원한다면 15~20초'라고 말한다. 맛나는 가지 무침을 원한다면 직접 해보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데치는 노하우를 찾는 수밖에 없다.
인도가 원산지인 가지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신라시대부터라고 한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한반도에서 즐겨 먹었던 채소라는 것인데 과연 가지무침은 우리 선조들도 즐겨 먹었을까? <조선무쌍 신식요리제법>(이용기,1924)이란 조리책에서 조선의 요리법을 소개하는 내용 중 '가지를 쪄서 갖은양념으로 무쳐 먹는' 레시피가 나오는 걸 보면 우리네 조상들도 여름 가지무침을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가지를 찌는 정도가 기호를 좌우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영양면에서도 데치는 것보단 찌는 것이 좋다고 하니 찜통에 가지를 넣고 센 불에서 3분 이상 쪄 보시라. 맛있는 가지무침을 위해 자~ 가지 무침 도전!!!!
3. 세계의 가지 요리
가지 하면 주로 가지무침을 생각하는 우리와 달리 세계 각지에서는 가지를 어떻게 먹을까? 우선 생각나는 곳은 중국. 모든 음식재료를 튀기는 게 기본인 중국이라 그런지 가지 역시 기름에 튀기거나 볶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어향가지'. 가지를 껍질째 어슷 토막 내서 기름에 튀긴 후 어향소스(생선 비린내를 잡기 위한 소스로 설탕 간장 고추 마늘 등등으로 만든다)를 끼얹은 요리다. 일종의 가지탕수라고나 할까... 또 가지의 껍질을 벗기고 토막내 기름에 튀긴 다음 피망, 감자와 함께 간장소스를 넣어 볶아먹는 지삼선도 있다. 이밖에도 가지 사이로 고기를 넣고 양념과 볶아 먹는다던가 그냥 불에 통째로 굽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가지를 튀기거나 굽는 방식은 서양의 가지 요리에서도 보편적이라는 사실이다. 얇게 저며 구운 가지에 치즈가루를 올린다던지(이탈리아 가지 파르미자나), 튀겨서 소스를 찍어 먹는다던지 혹은 순대처럼 속을 채워 넣기도 한다. 결국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보다 좀 더 다양하게 가지를 요리해 먹는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나 가지 요리에는 기름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 전문가들은 가지 과육의 구조상 지용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기름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헐. 이렇다면 지금껏 우리는 가지를 잘못 조리해 먹어 온 건 아닐까...?
4.우리의 전통 가지 요리
산중에 있다 보면 자주 식용 산야초를 뜯거나 재배하는 채소를 먹게 된다. 이때 가장 쉽게 먹는 방법이 나물로 먹는 것이다. 먹고도 남으면 데치고 말려서 나중에 또 나물이나 국거리로 사용한다. 요리에 문외한인 나도 이럴진대 요리고수들은 식재료를 얼마나 다양하게 이용하랴... 그러나 '다른 나라의 가지 요리를 먹어보고 나서야 가지 맛을 알았다'는 어느 셰프의 말대로라면 가지를 나물로만 먹어오던 우리는 가지의 참맛을 모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참에 선조들이 가지를 먹었던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가지김치
<증보산림경제>(유중림, 1766년)에 의하면 여름 가지김치는 약하게 탄 소금물을 끊여 식힌 다음 꼭지를 제거한 가지가 잠기도록 붓고 며칠 두었다가 먹는다. 겨울 가지김치는 마찬가지로 끊여서 식힌 소금물을 가지 항아리에 부은 후 무거운 돌로 눌러두고 볏짚으로 덮는다. 항아리 주둥이를 밀봉한 후 땅에 묻어 두었다가 섣달에 꺼내 먹는다. 이때 가지를 쪼개서 조청을 뿌려 먹는다 하는데 맛이 자못 궁금~~. 또 다른 책 <시의전서>(저자미상, 19세기말)에는 껍질 벗긴 가지를 십자로 갈라 소를 만들어 넣고 벗긴 껍질로 동인 후 실고추와 파를 넣어 익힌다라고 전하는데 현재의 많은 요리전문가들이 소개하는 가지김치 레시피(가지에 부추 등 양념을 소로 넣는 방식)와 매우 비슷해 보인다.
-가지선
가지에 칼집을 낸 다음 고기 등 소를 채우고 쪄먹는다<증보산림경제>. 지금은 레시피에 따라 칼집을 낸 가지를 소금물에 담근 후 짜서 소를 채우고 찌거나, 가지를 먼저 찌고 양념을 채우는 등 다양하게 변주된다.
-개말가
참기름을 두른 솥에 말린 가지와 소금을 넣어 볶은 다음 식으면 천연방부제 역할을 하는 마른 겨자가루를 고루 묻힌다. 항아리에 보관해 두고 꺼내 먹는다<임원경제지 정조지>(서유구, 19세기중반). 가지를 갈라 말린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가지굴젓
<증보산림경제>중 일종의 가지보관법을 이야기하는 '가지술지게미법' 설명에는 가지와 굴의 궁합에 대해 전한다고 한다. 생가지 한토막에 오래 묵은 굴젓을 얹어 먹으면 술안주로 좋다고 하니 주당분들이라면 시도해봄직하지 않을지...
-가지누르미
'누르미'라고 하면 찌거나 구운 식재료에 걸죽한 양념소스를 끼얹는 것을 말한다. 가지누르미는 넓적하게 자른 가지를 꼬치에 꿰어 간장 기름 밀가루 등을 바르고 구워 낸 것을 말한다<음식디미방>(장계향, 1670년경). 지금은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양한 레시피가 만들어진다.
-가지 무침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가지를 쪄서 양념으로 무치는 보통의 가지무침 외에 겨울조리법에 대해 전한다. 찢어 말린 가지를 물에 불려 물기를 짜낸 다음 고기를 다져넣고 참기름에 볶는 것인데 양념으로 무치는 것보다 더 맛있다고 한다.
5.가지 수확을 기다리며
이상 전통적인 가지요리 몇 가지를 알아보았는데 역시나 기름에 튀기는 조리법은 발견되지 않는다. 기름을 두르고 볶거나 전과 같은 형태로 구워내는 정도고 대세는 나물, 찜요리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우리의 음식은 담백한 게 기본인 듯하다. 사실 중국 음식처럼 기름지게 가지를 요리하면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 좋기는 하다. 이참에 초치는 소리를 한번 해볼까? 보라색인 가지는 항산화 작용을 하는 안토시아닌이 많고 식이섬유도 많아 다이어트에도 좋다. 그리고 가지 과육은 세포 사이에 미세한 공기층이 존재해 양념이나 향신료의 풍부한 맛이 잘 스며드는 특징이 있다. 이 말은 기름진 소스도 과육 내에 엄청 머금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더욱 진한 맛을 느끼게 되는데 기름진 가지 요리를 먹을 때는 양을 적당히 조절하는 게 건강에 좋을 거라는 말씀...^^! 어쨌거나 돌아오는 여름, 가지를 수확하면 해 보고 싶은 두 가지가 생겼다. 첫째는 생 가지에 굴젓을 올려 보고 싶은 거... 둘째는 삼겹살 구울 때 버섯이 아니라 가지를 함께 구워 보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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