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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초와 야생

노루 생태 관찰 - 행동 양식

by 두_메 202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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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준비냐? 야생관찰이냐?

지금쯤 농사준비로 바쁘게 돌아갈 계절입니다. 하지만 산방이 있는 곳은 아직도 본격적으로 농사를 준비하기엔 이른 시점... 그렇다고 이것저것 손댈 데가 많은데 뜬금없이 노루 얘기를 쓰자니 머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루들이 자주 찾아 오고 그게 또 눈에 들어오니 이것도 기록이라 생각하기로 합니다. 나의 모토... 는 최소한으로 일하고 최대한으로 즐겁게 놀자...인데 별반 현대식 농기구, 장비가 없는 관계로 몸을 써야 하는 일이 대다수지만 산방 주변의 야생을 관찰하는 일은 그야말로 놀자에 속하는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야호~

 


노루, 고라니가 좋아하는 장소 - 개활지

노루가 숲속에서 생활할 때 따라다녀 본 적이 없으므로 이 친구들이 뭘 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주로 먹이활동 구애활동 양육활동 등이 아닐까 합니다. 은신처를 마련하고 지내겠지만 계절적으로 지금 정도까지는 숲 속에서 노루가 먹을 만한 풀이 많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슴류의 동물들이 민가 밭 주변에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곳 산골짝, 사람이 찾지 않는 호밀밭 같은 환경은 사실 흔치는 않은데 고라니나 노루에게는 정말 지나칠 수 없는 강한 유혹으로 다가올 겁니다. 그래서 이 산중에 자주 출몰하는 것이지요.

 먹을게 많으면서 사방 경사지게 툭 트여 있어서 주변 경계가 쉽고 여기에 간혹 키 큰 풀숲이 있다면 엎드려 쉴 수도 있으니 이런 곳은 더없이 좋은 노루 놀이터가 됩니다.





노루의 개활지 진입 행동 양태 - 극도의 조심성

차를 타고 들어오다가 노루떼를 발견하면 그냥 차에서 찍습니다. 문소리를 내면 바로 사라져 버리는데, 맞바람을 받으며 노루를 보게 될 때 차를 가만가만 몰고 와 일정 거리를 두고 세우면 처음엔 쫑긋하다가도 노루가 곧 안심합니다. 노루가 맞바람 때문에 냄새를 맡지 못하고 움직임도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숲에서 호밀밭 개활지로 진입할 경우 노루는 엄청난 조심성을 보입니다. 여차하면 항상 숲 속으로 뛰어들 태세를 갖춥니다. 숲과 개활지의 경계선을 잘 벗어나지 않으면서 풀을 뜯는데 이때도 풀을 뜯는 건지 고개 들고 경계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예민합니다. 이러면서 한참을 보내고 안전이 확보된다 싶으면 그제야 호밀밭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합니다. 휴대폰을 들고 있기에 팔이 아플 정도로 기다려야 하는 시간입니다.ㅎㅎ





경계 기슭에서 보인 어미노루의 이상 행동

올 3월 중순경... 새끼 3마리와 어미노루 이야기는 이미 한 바 있지요? 숲과 호밀밭의 경계에 어미노루가 버티고 서서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은 정말 의욉니다. 조심성 많고 의심 많은 노루는 위험을 느끼고 자리를 이탈하면 어느 곳이건 그 길로 사라집니다. 적의 눈에서 멀어지는 게 상례입니다. 그런데 어미 노루는 그 자리에서 계속 울어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미노루가 서 있는 자리가 탈출 혹은 출발 대기선이라 보면 됩니다. 어미가 소리를 지르자 새끼 3마리중 첫 번째 큰 새 끼는 듣자마자 어미의 대기선 위로 튀어 올라갔습니다. 흐뭇하게 합격... 위험 경고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입니다. 둘째 새끼는 어미의 바로 뒤에 붙어 서서 어미와 행동을 같이 합니다. 이 역시 합격입니다.

그런데 막내 노루는 계속 대기선 밑에 위치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호밀잎을 더 먹고 싶거나 아니면 힘이 드는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어미의 계속되는 출발 준비 호령에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이게 어미노루가 위험에도 불구하고 멈추어 선 채 소리를 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윱니다. 결국 아기노루가 움직여 대기선으로 오르자 바로... 어미노루는 숲으로 점핑합니다. 새끼들도 점핑... 점핑... 점핑...

위험 인지와 이에 따른 행동방식을 가르치는 어미의 현장교육... 어미가 아니었다면 본능대로 그냥 도망갔을테지요. 위험과 무서움을 감수하고 본능을 거스르는 어미노루와 그 일가족의 그 장면이 사실 잊히지 않아 횡설수설했습니다... 헐.





노루와 고라니는 군집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3월초까지만해도 노루와 고라니는 호밀밭을 번갈아 나타나며 애용(?)했습니다. 그런데 3월 초 담비의 호밀밭 일대 사냥작업이 있고 난 이후 상황이 변했습니다. 고라니들은 보이지 않기 시작했고 노루는 더욱 자주 그리고 많은 수가 나타납니다. 이게 어찌 이럴 수 있을까요?

 최상위 포식자인 담비가 두세 마리씩 팀을 이루어 진행한 사냥들... 먼저 죽은 고라니의 외부를 보면 몸에 약간씩 털이 뭉쳐서 빠진 흔적이 2-3군데 보였고 , 양쪽 뒷다리의 무릎이하 바깥쪽 부분의 가죽이 길게 찢어져 벗겨진 점. 하얀 뼈가 드러나 있으니까 심각하긴 한데 그렇다고 온 골짜기가 울릴 정도로 비명을 지르며 단방에 죽을 만큼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도 의아하게 생각됩니다. 뭐 목덜미가 물렸다든가 하는 중대한  상처가 보이지 않았거든요. 아... 오른쪽 뒷다리 상처는 약간 시간이 흐른 듯했고 왼쪽 뒷다리 발목부위는 호밀밭 그 자리에서 발생한, 그러니까 담비의 왼쪽 발목 공격은 호밀밭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였습니다. 이때 약간 멀리서 맨눈으로 본 담비는 3마리인데 엄청 빠른 속도로 추적하며 선봉, 후공 준비, 차단 기동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멀리서 본 거라 확실치는 않지만서두.... 암튼 고라니의 사후 대개의 고라니들이 장소가 불안하니 서식지를 옮기자고 결의를 했는지 이때 이후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틀 후에는 담비가 노루를 추적했는데 운 좋게도 그 추적의 한 가운데에 산방이 들어앉아 있어서 생생히 볼 수 있었습니다. 담비가 산방을 우회하느라 걸린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노루에게는 구사일생의 황금시간이었다고 보입니다. 노루는 기진맥진 상태였지요. 사람이 따라가는 기척을 보여도 뛰지 못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막바지 한계상황이었는지는 말할 필요 없을 겁니다. 이렇게 노루가 살아 돌아간 이후로 호밀밭의 방문객은 모조리 노루로 바뀌었습니다. 이 두 가지 사례로 보아 야생동물 그룹 내 집단적 의사결정이나 최소한 한 방향의 분위기 정도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을까요... 궁금하긴 하지만 전문 연구자도 아니니 할 수 없고 다만 노루 무리가 내 농사나 망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재작년 검은콩 농사가 이 친구들 때문에 폭망 했거든요... 모든 새순을 기가 막히게 똑똑... 나오는 건 또 어떻게 알고 기다렸다는 듯 똑똑... 같이 함께 잘 살았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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