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 소리인가 고라니 소리인가...
지난 3월 중순경. 어스름 무렵에 산방 가까이, 너무나 가까워서 깜짝 놀랄 정도인 소리가 들려 옵니다. 이럴 수가... 야생동물들의 소리야 수시로 들려오는 것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손에 잡힐 듯 근접해서 들리는 소리는 참으로 아니 처음으로 맞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고요한 정적을 깨는 꽥꽥이는 소리... 포식동물인 경우에는 아예 소리를 내지 않는 법이라 듣는 순간 고라니인가 노루인가 짐작은 했습니다만 인기척이 나는 산방까지 이래 접근하는 경우는 도대체 이 친구들이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고라니 소리는 듣기에 조금 역겨울 정도로 하이톤에 여러 갈래로 찢어지는 고음... 아이 비명이라고도 혹은 여자 울음소리, 비명 등등 많은 표현이 있지만 이에 반해 노루 소리는 묵직합니다. 전반적으로 굵고 힘이 있어서 남성적인 느낌도 많이 납니다. 음정도 고라니 소리에 비해 약간 낮지요. 뒷산에서 들리는 소리는 역시 노루 소리였습니다. 하필이면 남의 집 창문 뒤까지 와서 그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냐 하는 것이지요.ㅎㅎ
뒷산 노루 소리에 담긴 뜻은?
듣기에 따라서 아니 일부러 들으라고 내는 고함인 듯한데 이 노루는 무슨 뜻을 전달하려 했을까요?
공교롭게도 얼마전 담비의 집요한 추적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그때의 노루가 올라갔던 그 뒷산입니다. 탈출에 성공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의 그 노루가 다시 찾아왔던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그 울음소리는 예사로 들리지 않고 뭔가 주장을 하려고 하는 노루의 표현으로 들렸습니다. 모든 동물의 소리는 역시 자기들만의 언어로 다른 편에게 의사를 전달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통은 이성에 대한 구애의 표현이라고 하지만 내 마음속으로는 마치 당신이 여기서 나가 주라... 나가 주라... 재촉하는 모양새로 읽혔습니다... 헐.
호밀밭 기슭의 노루 일가족
비탈진 호밀밭가로 어미노루와 새끼노루 3마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풀을 뜯기 시작합니다. 풀밭 초입에서 풀을 뜯다가 산방의 인기척을 느끼고 어미 먼저 기슭으로 올라가서는 소리를 내어 새끼들을 불러 모읍니다. 겁많고 예민한 노루의 성격상 바로 산속으로 사라져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어미노루는 새끼들을 옆에 둔 채 우렁차게 짖어대기 시작합니다. 이런 모습도 근자에 본 적이 없는 특이한 모습입니다. 얼마나 조심성이 많은 짐승인데 이런 돌발행동을 할까요? 노루를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헐. 그런데 약간의 위험을 인지하고도 저래 우뚝 선 채 소리를 지를까요?
이것 역시 노루가 전달하고자 하는 모종의 의사표현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어미노루의 마음을 표현해 본다면 이런거 아닐까요...? ' 여기 내 땅이야... 꽥꽥... 내 새꾸들도 먹고살아야지... 꽥... 너 때문에 못 먹고 있잖아... 꽥... 억울하다... 꽥꽥...' 새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미노루는 한동안을 소리쳤습니다.
아이고. 노루아줌마... 본의는 아닌데 미안혀유....
호밀밭 영역 싸움... 고라니는 어디로 갔을까?
호밀밭에서 무럭무럭 올라오는 호밀잎은 노루는 물론 고라니에게도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경계를 위해 시야가 확보되는 구릉이 있지요, 먹을 것 많지요... 산방 주위의 이 곳은 두 종류의 사슴들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루와 고라니가 번갈아 나타나며 공존을 했는데 (이때만 해도 영상으로 찍어 둔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때였지요.) 어느 순간 고라니가 사라졌습니다. 개체 간 영역다툼이라는 게 사슴들 간에도 있는 걸까... 과연 고라니는 왜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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